‘별거하거나 혼자 일하거나’…군인·외교관 부부, 일·가정 양립정책 실효성 떨어져

군인 부부 10쌍 중 4쌍은 사실상 별거 상태
보직 제한 등으로 사실상 일·가정 양립 제도 실효성 부족
전문가 "근거리 배치·근무시간 단축…현실적 여건 개선해야"

김채연,박서아 인턴 기자|2024/11/13 18:07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게티이미지
아시아투데이 김채연 기자·박서아 인턴기자 = #20년차 군인 부부인 남편 김모 대령(50)과 아내 이모 중령(49)은 다음 달부터 약 200㎞ 떨어진 장거리 별거 생활을 시작한다. 근무지에 따라 동거와 별거를 반복해 온 이들 부부는 현재 같은 군단에서 근무 중이지만, 이번에는 각기 다른 부대로 발령받았기 때문이다. 김 대령은 "동일 생활권 신청이 가능하지만 권역 내 보직이 제한적이고 진급을 위해 특정 직책에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경우가 있어 항상 함께 살기는 어렵다"며 "그동안 둘 중 한 명이 원하는 보직을 양보하거나, 별거 시에는 조부모님께 양육을 맡겨 왔다"고 했다.

#현재 같은 해외 공관에서 근무 중인 3년차 외교관 부부 임모씨(33)와 김모씨(31)도 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외교관 특성상 2~4년에 한 번씩 해외 공관으로 발령받지만, 매번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씨는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대규모 공관에 함께 배치될 가능성은 있지만 평생 같은 공관으로 발령받긴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대륙으로 발령받게 되면 시차 때문에 아이와 연락조차 힘들어질 수 있어 휴직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공무원을 위한 일·가정 양립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군인과 외교관 등 외부 전출이 잦은 직종들은 제한된 보직 등으로 제도 적용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가정 양립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군인과 외교관 가족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마련과 함께 사회적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13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약 4000쌍에 달하는 군인 부부 중 실제 동일지역에 근무하는 비율은 약 60% 수준에 그쳤다. 국방부가 군인 부부가 동일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보직조정 제도 등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군인 부부 10쌍 중 4쌍은 사실상 별거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발령이 잦은 외교부 공무원 가정은 강제 별거를 버티다 못해 외벌이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기혼 공무원 60만명 중 외벌이 공무원이 10만명이지만 외무공무원의 경우 약 1000명 중 600명이 외벌이다. 외벌이 비율이 전체 공무원에 비해 무려 3배나 높은 셈이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부부가 원거리에서 근무할 경우, 한쪽이 직업적 목표를 포기하고 배우자의 근무지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며 "특히 서로 다른 국가에서 근무하는 초장거리 별거 상황에서는 한쪽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다른 직무에 비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권익위원회는 지난 7일 근무지가 달라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지 못하는 맞벌이 공무원을 지원하기 위해 배우자와 같은 지역에 거주할 수 있도록 전출 제한 기간 중이라도 전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개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이 역시도 전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강제성이 없다.

전문가들은 같은 지역 근무를 배려하는 제도가 있어도 보직 등 현실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별거 생활이 불가피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제도 마련을 넘어 현장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여건 등이 뒷받침돼야 부족한 정책 운영의 실효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육군 예비역 중장 김모씨는 "진급을 위해서는 특정 직책을 거쳐야 하는데 부대 내에 자리가 없으면 경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외교부 소속 사무관 김모씨 역시 "외교관 부부를 위한 배려 지침이 있긴 해도 비슷한 직급 자리가 많은 곳은 주로 대형 공관에 한정되는데 부부가 항상 대형 공관에 배치될 순 없다. 작은 공관으로 가면 보직이 없다"고 호소했다.

송다영 교수는 "보직 등이 문제로 같은 지역 근무가 어렵다면 최대한 근거리에 배치하고 근무시간을 단축해 가족이 함께할 시간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특히 양육 가정의 경우에는 같은 지역에 배치될 수 있도록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