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모든 사람은 세상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5> 美 스토리코어 이동스튜디오 그리오

논설심의실|2024/12/08 18:12
스토리코어 이동스튜디오 그리오(Griot)
전직 라디오 프로듀서인 데이브 아이세이(Dave Isay)는 2000년 8월 미국 뉴욕 밑바닥 인생들을 취재한 '플롭하우스(Flophouse)'를 썼다.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그들이 소개된 페이지를 보여주자, 조용히 그걸 바라보며 서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아이세이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쥐고, 빈민굴 같은 좁고 긴 복도를 달리면서 외쳤다. "나는 살아있어! 존재하고 있다구!" 이때부터 스토리코어(Story Corps: 이야기집단)의 메시지이자 슬로건은 '나는 존재한다(I exist)'가 된다. (지금은 '경청하고, 존경하고, 공유한다'도 같이 쓰인다)

아이세이는 2003년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녹음 부스를 설치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취해 왔다. '사람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로 자신의 의미 있는 인물들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는 취지였다. 그때부터, 독특한 이름의 구술 프로젝트 '스토리코어'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은 단 하나의 컬
렉션이 되었다. 평범한 삶에 담긴 진정성을 후대에 알리고자 하는 인류애적 프로젝트인 것이다.

'누구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역사'와 '이야기'의 어원은 라틴어 '히스토리아'로 같다. '역사=이야기'라는 의미다. 역사에 그냥 지나간 시기가 없듯이, 인생에도 그냥 지나친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움직이는 박물관'이라고 해야 할지, 오럴 뮤지엄(Oral Museum)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데, '보통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하면 적당한 표현일 수 있을까.
스토리코어 이동스튜디오 그리오(Griot)의 내부
2005년부터 그는 대포알처럼 생긴 이동부스를 몰고 미국 전역에서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역사를 이야기나 노래로 물려주는 사람을 '그리오'(Griot: 전통적인 이야기꾼)라 부르는데, 그는 이동부스에 이 이름을 붙였다. '보통 사람들의 인터뷰가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2015년 테드 프라이즈(TED Prize) 수상소감을 밝힌 그에게 '스토리코어의 미래'를 물으니 '인간의 지혜를 모으는 더 큰 디지털 보관소가 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야기가 모여 지혜가 된다'는 그의 생각이 놀랍다. 그가 모은 목소리는 뻔한 무용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이다. 스토리코어가 자신의 도시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모, 형제, 친구, 사제간의 녹음 신청이 쇄도하고, 그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메시지를 작은 부스 안에서 서로 나눈다. 그 메시지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감동으로 이어지고,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이 경이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 공영 라디오 NPR의 '모닝 에디션(Morning Edition)'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고, 미국 의회도서관에도 보관된다. 이민사회, 다문화사회 등 복잡한 미국사회를 통합하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는 논평도 이어졌고 큰 상도 많이 받았다. 이런 구술기록 프로젝트의 주인공 아이세이의 작업은 관(官) 주도도 아니고, 방송사 프로그램의 부산물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값어치가 높다.
시간의 갈피마다 묻혀 있는 사람들의 결기를 느끼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세상살이에 아무리 멱살 잡혀도 당당한 것은 도도히 흐르는 시간이었음을, 그것 또한 대단한 역사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진실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설사 미뤄지더라도 끝내 다시 만나게 될 믿음이 있다는 것. 그 시작과 끝을 보았다. 어떤 박물관이든 과거를 모두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집단'이 애써 붙들고 있는 진실들은 '과거 없이는 미래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는 경고를 보낸다. 아무튼 삶이란 인생의 대괄호인 '생'과 '사' 사이에 숨어있지 않은가. "나는 녹음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 인간 사이의 불화(不和)를 이처럼 잘 녹여내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미디어의 감동적인 특집기사를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고마워하지만, 더 따뜻한 이야기, 더 깊은 슬픔을 긷는 장치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언론사에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좋은 장비로 담아야 한다는 과욕도 버리고, 언론사만 나서야 한다는 편견도 버리고, 예산이 넉넉해야 한다는 오만도 버려야 한다. '스토리코어'의 모든 것이 나에겐 큰 울림이었다. 우리는 '세상은 오히려 자신을 잊으라 했다'는 설움을 안고 사라지는 역사의 주인공들을 만나야 한다. 아이세이와 스토리코어가 더 늠름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前 대구교육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