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기차 캐즘 속 배터리 장비업체의 희망 찾기

2024/12/11 06:00
김종성 엠플러스 대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2차전지 업계에 긴장감이 팽배하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근거한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공언해 국내 2차전지 시장도 함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전문가들은 IRA 폐지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한다.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IRA가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고 있고, 폐지 시 미국 시장을 중국 전기차 기업에 내줄 리스크가 있어 정책 수정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IRA 폐지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자국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선언한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첫 행정명령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관세의 칼을 빼 들었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시도한 바 있어, 친환경 자동차 관련 사업인 2차전지 업계에 먹구름이 가득한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에서도 기회는 찾을 수 있는 법. 2차전지 전방 산업의 혼란 속에서 배터리 장비업체들은 성장과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활로를 찾는가 하면,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되고 있는 각형이나 원통형 배터리 양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화재의 위험이 없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제작하려는 내재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장비업체들에게는 기회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내년부터 신차 평균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상한을 93.6g/㎞로 강화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50억 유로(약 22조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강경책을 내놨다. 이에 따라 유럽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은 전기차 생산을 확대해야 하며, 전기차 수요가 최소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여름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후 더 높은 안정성을 지닌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각형, 4680 원통형, 전고체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각형 배터리는 알루미늄 캔에 셀을 넣어 외부 충격에 강하며, 내부 가스를 내보내는 배출구와 특정 전류가 흐를 때 회로를 차단하는 안전장치가 내장돼 있다. 넓은 밑면으로 하부 냉각판과 접촉면을 키울 수 있어 방열에도 우수하다.

원통형 배터리도 각형 배터리처럼 단단한 캔이 외부를 감싸고 있으며, 내부 압력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회로를 차단하는 보호 장치가 탑재돼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꿔 발화나 폭발 위험이 없으며, 에너지 밀도와 출력도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뛰어나 '꿈의 배터리'로 불리며 차세대 배터리 솔루션으로 부상했다.

이런 배경 아래 셀 제조사들이 각형, 4680 원통형 배터리의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상용화 개발에 뛰어들면서 준비된 장비 업체들은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각형 배터리의 경우, 젤리롤 인서트, 캔 용접, 리크 검출, 전해액 주입 공정에서 높은 정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술력을 갖춘 장비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4680 원통형 배터리는 기존의 2170 배터리와는 다르게 캔 상단과 하단에 모두 부품 제조공정이 추가된다. 이전 2170 배터리 장비 외에 유관 장비 수요가 새롭게 생긴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 역시 기존과는 다른 장비가 필요하다. 전해액 주입 공정이 불필요한 대신, 조립 공정에서 활물질과 고체 전해질 간 밀착력을 높이기 위한 고압 프레스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일부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서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며 제조설비 구축을 서두르는 것도 장비 업체들에게는 또 다른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기존 배터리 제조사뿐만 아니라 완성차 기업들까지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침과 변화가 많은 2차전지 시장이지만 기술 경쟁력을 갖춰 새로운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장비 업체들에게는 희망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특히 앞으로 3~4년 동안은 각형 설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각형 설비를 제조하는 조립장비 회사가 큰 수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의 시장 침체기는 탄탄한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갖춘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시기를 잘 활용한다면, 후발 기업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