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투포커스] 정치혼란 직격탄 두산, 재편 청사진 무산

주가 급락에 사업 재편안 철회
외부환경 탓 분할합병 백지화

안소연 기자|2024/12/10 18:05
두산그룹이 생존을 넘어 미래 준비를 위해 그렸던 사업 재편 청사진이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안 부결 사태의 여파로 좌초됐다. 주주들과 합병 비율 등의 이견으로 여러 고비를 넘겼지만 이번처럼 외부 환경으로 아예 무산된 것은 그야말로 돌발상황이다.

발목이 잡힌 건 며칠새 주저 앉은 '주가'다. 이번 재편의 핵심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비상계엄 당일인 3일 2만1000원대에서 마쳤으며 지난달 말에도 유사한 흐름이었다. 사업 재편을 논하는 12일 임시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는 주주들은 주식매매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 행사가는 2만890원으로, 주가가 이 밑으로 크게 내려가는 건 큰 리스크다. 이를 예의주시하는 상황에서 주가는 비상계엄 바로 다음 날 1만9000원대로 내려앉더니 현재는 1만7000원대를 오가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밸류업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작 정치 불안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고 두산 같은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나오고 있는 셈이다.

10일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 재편 철회를 밝히면서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분할합병 당사 회사들의 주가가 단기간 내에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의 괴리가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도 곧바로 주주서한을 내고 같은 내용을 알리면서 "현 상황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회사 역시 당장 본건 분할합병 철회와 관련해 대안을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투자자금 확보 방안과 이를 통한 성장 가속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업 재편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으나 주가 급락으로 사업 재편안 철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은 그간의 부침을 딛고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캐스팅보트였던 국민연금이 조건부 찬성, 사실상 기권 입장을 던진 것은 두산의 개편안에 찬성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금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챙긴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3분기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6.85%를 보유하고 있어 ㈜두산에 이어 2대 주주다.

박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역시 금번 분할합병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주식매수청구권 확보를 위해 조건부기권을 결정했다. 이러한 주주님들의 입장을 회사는 충분히 이해하고 여전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물론 두산에너빌리티가 주식매수 한도로 6000억원을 설정했지만, 청구권 행사가 6000억원을 넘어갈 때에는 6000억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두산으로서는 부담이 큰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6개월간 전력을 다해 온 두산그룹으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재편안은 구체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 법인으로 분할하고, 신설법인을 로보틱스에 합병하는 게 골자였다. 두산밥캣이 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합병 비율을 놓고 주주들과의 진통이 있었고,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정정신고서를 무려 7번이나 수정하면서 뚝심 있게 단계를 밟아 나갔다. 합병 비율 역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경우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4.33주를 받게 되는 식으로 조정하는 등 절충안을 고안해 냈다. 이후 그룹은 투자 설명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사업 재편의 목표가 연관 있는 사업 분야를 묶어 시너지를 내는 데 있다는 설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회사분할합병 계획에 대한 철회는 갑작스러운 대외 여건에 따른 결정으로 향후 일정에 대한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 "향후 다양한 대내외 여건을 검토하고 결정돼야 할 사안이므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는 상당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