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민이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이유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2024/12/20 06:00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시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허가를 받아야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 또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시설에 대해서 국민이 불안해 한다면 그건 원안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제기관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탈원전을 주장하던 사람들 가운데 원자력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행정시스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탈원전을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도 있다. 정부의 관리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 본인의 무능이고, 정치인이라면 정치를 그만두는 편이 좋다.

원자력안전규제는 원자력안전성을 확보하는 또다른 수단이다. 사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기본적인 안전성에 대해서는 간여하고 확인함으로써 추가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신뢰가 필요하다. 그런데 원안위는 국민불안과 탈원전 정책에 대해 원자력안전규제 기관으로서 책임감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안위의 보도자료가 그렇다.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원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업자 입장에서 언론에 알리는 것과 규제기관 입장에서 언론에 알리는 것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사업자는 사실 자체를 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규제기관은 규제 차원에서 중요성, 조치가능성, 조치의 적절성, 자원의 투입 등을 설명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탈원전 정부에서 원안위의 보도자료는 도리어 국민불신을 부추키는 경향이 많았다. 검찰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던 라돈침대 사건에 대해서도 당시 원안위는 신나서 방사선의 잠재적 위험성을 홍보한 듯 했다. 월성부지의 삼중수소수의 경우도 월성원전부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민관합동기구라는 우스꽝스런 조직을 만들어서 논의를 이어갔다. 원자력이나 방사선 사용자의 문제에 대해 제보를 받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알지못하는 위험의 가능성을 알리는 느낌도 든다. 원안위가 문제를 확대하거나 우려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마치 알리는 것으로 의무가 끝났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지난 10월 미국 남동부에 허리케인 헬린이 강타해 사망자 150여 명이 발생하고 여러 가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자력시설은 그 정도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되며, 규제기관이 예의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나는 원안위가 그런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공약집에서 탈원전 정책의 이행부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안위가 명시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산업부는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전을 배제하는 것으로 탈원전을 이행할 수 있지만 원안위는 좀 다르다. 시설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구이고 원자력을 한다는 전제하에 존재의 이유가 있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독립성을 중시하는 원안위가 탈원전 정책의 이행부서가 됐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그 시절의 행정은 안전성을 확보하기 보다는 사업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혹시 그때의 관행이 남아있다면 고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국민불안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