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로]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민주주의

주성식 기자|2024/12/20 06:00
2010년 12월 중순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돼 거의 모든 아랍 국가로 확대된 민주화 요구 물결을 의미하는, 이른바 '아랍의 봄'이 발생한지 정확히 14년이 지났다.

당시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호스니 무바라크, 알리 압둘라 살레 등 수십년에 걸쳐 장기집권해온 독재자를 쫓아낸 리비아, 이집트, 예멘에서는 민주화를 기대하는 희망이 잠시나마 싹트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랍세계의 고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수니-시아파 갈등, 이슬람 원리주의의 득세, 군부 쿠데타 등에 막혀 '아랍의 봄'이 이끌어낸 민주화 열풍은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촉발된 내전을 최근 13년 9개월만에 끝낸 시리아의 앞날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이슬람 무장세력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을 주축으로 한 반군의 승리로 53년에 걸친 알아사드 가문의 철권통치를 끝냈지만, 현재 시리아가 처한 상황이 민주화를 기대하기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이슬람국가)의 등장,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 미국·러시아·튀르키예·이란 등 외세의 경쟁적 개입 등과 같은 난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그 누구도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됐다.

게다가 알아사드 정권에 맞서온 반군 집단들조차 여러 종파와 이해관계로 분열돼 있어 자칫 이들 사이에서 제2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동 산유국도 민주화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세금을 거두지 않아도 석유나 천연가스를 팔아 얻은 수입만으로 충분히 국가경제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부를 독점한 왕실이나 특정 부족 중심으로 구성된 정부가 국민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 국민들도 정부가 제공하는 금전적, 복지 혜택에 오랜 기간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정부가 강압적인 정책을 펼치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민주화를 이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시간에 기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는데 200년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반세기도 안되는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대한민국은 정말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힐 만하다.

지난 17일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외신센터 브리핑에서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라는) 행동을 취하자 의회가 탄핵으로 대응했고,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들어섰다"며 "민주주의 제도는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그가 2021년 1월에 있었던 미국 의회 난입 사건을 거론하며 "우리 미국도 민주주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은 어려워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