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어디서든 나라를 세우려면 합법적으로 무력을 독점해야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21회>

논설심의실|2024/12/22 18:03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역사 서술에서 영웅이 중시되는 까닭은 국가 형성 이후 한 개인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서 외계인 미도는 더 따져 물었다.

"역사에서 영웅이 중시되는 이유가 권력 집중 때문이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웅이 다수 군중을 움직여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영웅전이야말로 역사의 진실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서술 방식이 되겠군요. 진정 그러하다면 권력 집중은 과연 왜, 어떤 조건 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발생하게 되나요? 왜 소수 특별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어야만 하나요? 왜 대다수 군중은 못 가진 권력을 특정 개인들이 독차지하게 되었을까요?"

◇ 함무라비의 정복 전쟁: 무력 독점의 과정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0)는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집중된 권력을 누리게 되었을까? 그가 정복 전쟁을 통해서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에 미치는 거대한 영토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과정을 군사적으로 표현하면 무력 독점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수십 개 도시국가들이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천하의 권력이 지역적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정복 전쟁을 통해서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결과, 함무라비는 막대한 무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무력을 독점하자 그에게 천하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함무라비는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 신-무발리트(Sin-muballit)는 이미 100년 전에 세워진 도시국가 바빌론을 20년간 통치한 왕이었다. 바빌론 왕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함무라비는 왕위를 물려받아 43년간 통치했다.

그 43년을 통치하는 동안 그는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국가를 구축했다. 정복 전쟁 과정에서 강성해진 군사력 덕분이었다.

함무라비가 왕좌에 오를 무렵 바빌론 왕국은 조상대부터 주변의 보르시파(Borsippa), 키쉬(Kish), 시파르(Sippar) 등의 도시를 병합하여 꽤 큰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그래봐야 바빌론 왕국의 영토는 동서로 대략 60㎞, 남북으로 160㎞ 정도에 머물렀다. 작지 않은 영토였지만, 메소포타미아 여러 도시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즉위 초부터 함무라비는 사방에 놓인 도시국가들과 군사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라르사(Larsa)의 림신(Rim-Sin)은 이미 페르시아만의 여러 도시를 병합하여 바빌론 남쪽 국경까지 치고 올라온 상태였다. 림신은 이신(Isin), 우루크(Uruk)와 연합하여 함무라비를 압박했다. 동쪽으로도 강력한 경쟁국 에슈누나(Eshnunna)가 성장해 있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한 도시를 섬멸하는 장면. 기원전 865-860년경. 대영박물관 소재.
함무라비의 시대는 정복과 병합이 꼬리 물고 이어지는 메소포타미아의 전국시대였다. 강성해진 도시국가들 사이의 군사적 대립은 당연히 먹고 먹히는 영토 분쟁으로 표출되었다. 원거리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낱낱이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 지역적 대통합을 갈구하고 있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그는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영토국가를 건설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격변의 시대 수성(守成) 군주로서 물려받은 왕좌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 전술은 주변국에 대한 선제공격임을 함무라비는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가 만든 통일국가는 바빌론 남쪽으로 200㎞, 북쪽으로 200㎞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 위에 세워졌다.

무력 독점이 권력의 집중을 가능하게 하여 넓은 영토를 아우르는 제국적 통합이 이뤄질 수 있었다. 정복 전쟁은 지역 맹주들 사이의 권력 투쟁을 종식하고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군사적 병합으로 여러 지역 사이의 정치적 통일을 이루면 경제적 혜택은 넓은 영토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컨대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의 전 지역을 하나로 아울러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통일 군주였다.

함무라비 시대 바빌로니아의 지도. 대략 1792년에서 1750년경.
◇ 국가란 합법적으로 무력을 독점한 조직

작은 무리 중심의 수렵·채집의 사회에선 과도한 '권력 집중'의 현상이 나타날 수 없었다. 도시가 생겨나서 인구가 밀집되면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공동의 대규모 사업을 효율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정부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형성되면서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 밑바탕에 무력 독점이 깔려 있었다. 여기서 무력이란 치안유지와 영토수호를 위해 국가가 조성한 공권력을 의미한다. 길어야 5000년도 못 되는 짧은 시간이다. 수십 만년 호모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최근세에 국한된 지극히 예외적 현상이다.

1927년 8월 중국공산당의 영도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된 후 장제스의 급작스러운 숙청으로 당의 명운이 불확실했던 그때 서른네 살의 젊은 당원 마오쩌둥은 강력한 군사력 없이는 정치권력을 확보할 수 없음을 자각했다. 마오쩌둥의 자각대로 정치권력은 군사력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적 선거 과정을 거쳐 정치권력을 얻는 미국의 대통령은 미군 총사령관(commander-in-chief)의 지위에 오른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미 대통령이 군대의 총사령관직을 맡는다는 사실은 정치권력이 결국 군사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개 사례에 불과하다. 지구인의 정치사에서 정치권력과 군사력의 역관계를 살펴보면, 정치권력은 군사력의 기초 위에 서있는 불안한 건축물처럼 보인다. 안팎의 충격으로 정치권력은 무너질 수 있지만 군사력이라는 권력의 토대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국가는 무너지지 않는다.

지구인의 역사에서 권력 집중이 발생한 근본 이유는 무력 독점이라 할 수 있다. 권력 집중은 무력 독점에서 시작되고, 또 완성된다. 누구든 한 영토에서 무력을 독점하는 자는 정치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물론 정치권력을 안정적으로, 지속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선 단순히 무력의 장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력을 독점하지 않은 국가는 국가라 할 수가 없다. 여기서 무력이란 당연히 공권력을 의미하며, 공권력이란 치안과 방위를 맡은 경찰과 군대의 무력을 말한다. 무력이 없는 국가는 절대로 국가로서 제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정의에 따르면, 국가란 배타적인 영토에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인간의 정치적 결사체를 의미한다. 돌려 말하면, 한 지역에서 정당한 이유를 들어서 무력을 독점한 조직이 생겨나면 국가를 만들 수가 있다. 흔히 국가의 3요소를 영토, 국민, 주권이라 하지만, 진정 국가 형성에 필수적인 3요소는 영토의 확보, 폭력의 독점, 합법성의 획득이라 해야 더 과학적이다.

함무라비가 정복 전쟁을 통해서 건설한 통일국가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확장된 거대한 영토 내에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했다. 바로 그 합법성을 드높이기 위해서 함무라비는 전 지역에 통용되는 보편적 법전을 제정했다. 만약 함무라비가 힘으로 주변을 복속시킨 정복 군주에 머물렀다면 진정한 영웅의 반열에 못 끼었을 수도 있다. 그가 진정 역사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배타적 영토 내에서 무력을 독점한 후엔 법전을 제정하여 합법성을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