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기 정국에 다시 보는 박세일의 지도자론

2024/12/22 18:01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이은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비상시국이 펼쳐지고 있다. 졸지에 선장을 잃은 대한민국호(號)가 가뜩이나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지혜롭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조속히 내부를 정비해 국정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정치권과 사법부, 행정부, 기업 등 국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할 때다. 특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하고, 야당도 최소한 한 대행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한 대행을 '탄핵' 운운하면서 흔들어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찍이 일본이 낳은 세계적 석학인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1923~2004)는 명저(名著)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아무리 훌륭한 관료, 기업인, 문화인이 배출된다고 해도 정치가 3류면 그 나라의 장래는 없다"며, 이른바 '3무(無)의 정치'를 거론했다. 소신(Conviction), 정책(Policy), 책임(Responsibility)이 없는 '3N'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잘 되어도 정치가 잘못되면 무의미하고 끝장이라는 얘기다.
고 위공(爲公)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생전에 경세(經世)와 안민(安民)의 대강(大綱)을 정리한 '지도자의 길: 안민학(安民學) 서문'에서, 특히 "치열한 준비도 고민도 없이 지도자가 되려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죄악"임을 강조했다.

위공은 경세와 안민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적어도 4가지 능력과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첫째, 애민(愛民)과 수기(修己)이다. 국민과 나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수양에 투철해야 한다. 국가 경영은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자기 수양을 위해서는 사욕(私慾)과 소아심(小我心)을 줄이고 공심(公心)과 천하심(天下心)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대사에 임해야 한다.

둘째, 비전과 방략(方略)이다. 나라를 이끌어갈 큰 방향과 이를 실천할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과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 그리고 해결 방식에 대하여 확고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은 어떠한 시대이며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야 국가 비전과 주요 국정과제를 수립할 수 있다.

셋째, 구현(求賢)과 선청(善聽)이다. 인재를 널리 구하고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선청이란 인재들의 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드는 태도가 바로 선청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말을 많이 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한비자(韓非子)는 "지도자가 입장을 미리 밝히면 신하들의 진정한 충언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넷째,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이다. 역사의식을 갖고 다음 시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국민들과 역사에 남겨주고 물러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위공의 '지도자의 길'에서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사명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대(大)리더십을 펼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인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춘 자가 대의명분과 시대정신 그리고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게 국사(國事)를 지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접한 '미국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고민을 반세기 동안 연구한 역사학자이자 정치평론가 도리스 컨스 굿윈의 역작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이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있다.

굿윈은 '리더십'이란 덕목을 설명하기 위해 혼란기 때 가장 뛰어난 리더로 활약한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을 소환한다.

"리더는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분열과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과 적합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결코 명령만 하는 권력자들이 아니었다. 네 명의 대통령들은 솔선수범하고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명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치적 기회가 왔을 때는 절대 놓치지 않고 통제력을 강화했다. 그들은 정치적 자산을 이용해서라도 끝까지 정의를 향해 목적을 달성했다.

네 명의 대통령의 역경과 그것을 견디는 과정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숨이 턱턱 차오를 정도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야망의 궤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들의 회복탄력성은 역경 이후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세계질서의 변화와 국내환경의 변화를 조율하면서 자기를 낮추고 국민을 섬기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심과 시대정신에 투철한 정치지도자를 국민들은 갈구한다. 최소한 염치를 알고, 통합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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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