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돼지독감, 짐승 학대한 ‘죗값’

2009/04/27 20:30

논설위원 김영인

돼지독감, 짐승 학대한 ‘죗값’ 어울렸다. ‘평화공존’했다. 그러나 사람이 짐승을 배반했다. 짐승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짐승가죽으로 옷을 짓고 뼈로는 장신구를 만들었다. 고기는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사람의 횡포가 심해지자, 짐승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곰이 가장 먼저 모였다.
곰은 “우리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다”며 사람에게 선전포고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흰곰이 망설였다. “사람에게는 창이 있고 활도 있다”고 말렸다.
곰은 자기들도 무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만들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곰의 발로는 창을 던질 수 도 화살을 쏠 수도 없었다.

사슴도 회의를 열었다.

사슴은 착했다. 사람과 싸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사람이 사슴을 죽일 때에는 사슴 영혼에게 잘못을 빌고 용서받도록 했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마법에 걸려 고생하도록 만들기로 했다.

뱀도 회의를 했다.

뱀은 사람에게 ‘뱀꿈’을 꾸도록 만들었다. 몸을 둘둘 말아 질식시키는 무시무시한 꿈으로 사람을 괴롭히기로 했다.

새와 곤충도 각각 모였다.

질병을 만들어 사람에게 퍼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나무와 풀만은 사람에게 친근했다. 사람 이 걸리는 질병을 한가지씩 맡아서 치료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세상에 약(藥)이 생기게 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에 나오는 얘기다.

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에서 ‘돼지 인플루엔자’가 발생, 사람을 혼내고 있다. 벌써 수십 명이 죽었고, 수천 명이 감염되었다는 보도다. “대유행 가능성이 있다”며 떨고 있다.

광우병과 ‘조류 인플루엔자’로 떠들썩하더니 이 번에는 ‘돼지 인플루엔자’다. 사람들은 바이러스 가 공격하고 있다며 ‘바이러스 탓’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광우병이 무섭다며 소를 떼죽음시켰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퍼졌을 때는 닭을 싹쓸이 했다. 오리까지 덤으로 ‘살(殺) 처분’했다. 이번에도 ‘바이러스의 싹’을 없애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돼지가 ‘살처분’될 차례다.

그까짓 돼지 좀 죽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돼지는 단지 ‘식량’ 이기 때문이다. 먹기 곤란한 ‘식량’을 죽여서 파묻 는다고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그래도 생각을 해보자. 사람은 짐승을 너무 학대 했다. 닭은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닭장에서 사육된다. 빨리 키워서 팔아먹으려고 하루종일 불을 밝혀둔다. 그래야 쉬지 않고 모이를 쫀다. 부리를 지져버리기도 한다.

소에게는 가축을 도살하고 남은 찌꺼기를 강제로 먹이고 있다.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 다. 전기충격기와 지게차, 물 호스 등으로 괴롭히고 있다.

수퇘지는 태어나자마자 고환이 제거되는 고통 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고기 맛이 좋아지는 것이다. 물론 마취제 따위는 없다. 좁은 우리에서 숨이 나 겨우 쉬다가 ‘식량’으로 팔려나갈 뿐이다.

어쩌면 사람은 짐승을 학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
나무와 풀이 자랄 땅도 빼앗고 있다. 나무와 풀 마저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약이 되기를 거부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