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부동산 시장에 고인 돈 물꼬 트였다

부동자금 800조원 시대…하반기 다양한 부동산으로 몰릴 듯

고수정 기자|2009/06/25 08:35
#사례1. “모델하우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 몰랐습니다. 2~3년 만에 처음이네요.(분양 대행사 관계자)”

지난달 들어 모델하우스 입구와 내부에 입장객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담석에는 2~3명씩 줄지어 앉아 설명을 듣고 있고, 상담 전화통이 연신 울려대는 것 또한 예삿일이 된지 오래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움츠렸던 주택시장이 조심스레 기지개를 펴고 있다”며 “강남 재건축에 국한됐던 매수세가 최근 신규 분양시장으로 옮겨 붙고 있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례2. 금융자산이 10억원에 달한다는 자영업자 남모(58)씨는 도시형 생활주택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 나홀로 가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다가, 때마침 정부가 나홀로 가구 수요를 대비한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규제를 완화키로 했기 때문이다.

남 씨는 “언제까지 내가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 계획을 세우기 위해 알맞은 투자처를 찾고 있다”며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론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이 제일인 듯싶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800조원의 부동자금과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을 통해 쏟아진 보상자금이 서서히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면서 한 동안 숨죽였던 부동산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의 골이 아직까지 깊은 상태지만 저금리에서 적당한 투자처를 구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향후 유동성시장을 염두에 두고 부동산시장으로 몰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풀린 ‘돈’ 힘인가…집값 상승세 확산 중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이 지각변동을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과열을 우려할 정도다.

집값의 바로미터 격인 강남 아파트값이 상승하면서 부동산 바닥론에 대한 기대심리가 형성된 지 오래다. 강남 이외의 서울 지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 고가 아파트 값 역시 종전 최고가 수준으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3.3㎡기준)이 1800만원 선을 회복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약 6개 만에 회복으로, 하반기 경기 회복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저층 재건축 등 투자유망 지역의 매물을 미리 선점하려는 매수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강남4구는 일제히 오름세를 기록하며 매수문의ㆍ거래 모두 급증했고, 매물도 대부분 회수된 상태로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개포주공1단지
개포 시영 42㎡(13평형)는 6억8000만~7억5000만원 선으로 한 주 동안 무려 1억원이 올랐다. 개포 주공1단지 50㎡는 과거 최고 시세가 9억5000만~9억6000만원이었으나 최근 9억6000만원에 팔리며 역대 최고가 수준까지 올라섰다. 대치동 삼성래미안 132㎡(12억5000만~14억원)도 한 주 동안 4000만원 올랐고,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역시 일주일새 5000만원 정도 올라 112㎡는 12억5000만원, 119㎡는 15억원을 호가한다.

이밖에도 노원구 상계동 주공10단지 76㎡가 1000만원 가까이 상승해 3억~3억3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으며, 강동구 고덕주공7단지 89㎡가 한주 동안 2000만원 오른 8억2000만~8억4000만원 선에, 여의도 대교아파트 100㎡가 종전 최고가(7억1000만원)를 넘어선 7억5000만~8억원의 시세를 형성하는 등 가격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내집마련정보사 양지영 팀장은 “부동산 규제 완화, 개발 호재 등으로 하반기에도 큰 이변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집값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에 불안심리는 여전한 만큼 지역별로 쏠림현상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20억원 이상 고가주택 거래 급증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주춤했던 고가주택의 거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바닥론이 확산되고 주택경기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자 고가주택 수요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20억 이상의 가격에 매매계약이 체결된 아파트는 모두 144건으로 월평균 36건의 거래가 성사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1월~6월까지) 106건, 월평균 17.7건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준이다.

통상 20억원이 넘는 고가주택은 이른바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인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은데다 최상의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어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부동산뱅크 장윤정 연구원은 “예전에는 고가주택을 투기보다는 실수요를 목적으로 매입하는 수요자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투자목적으로 주택 구입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특히, 고가주택의 경우 주변 환경과 지역적 특징, 건축의 콘셉트와 건축가의 작품성, 커뮤니티 등을 고려해 매입해야 제한적인 환금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수익형 부동산 시장도 기지개

한편에선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로 위축됐던 수익형 부동산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상가ㆍ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투자를 위해 중개업소를 찾거나 재테크 방법 및 대상을 물색하기 위한 예비투자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특히 서울 도심 역세권에 위치한 상가나 오피스텔의 경우 임대수요가 풍부해 안정적인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 경기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09년 1분기 전국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량은 올 1월 7598동ㆍ연면적102만3000㎡에서 3월 1만3492동ㆍ209만㎡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던 거래는 석 달 연속 늘어났다. 지난해 3월 거래량과 비교하면 70%선이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거래량 감소를 감안하면 회복세가 빠르다.

상가뉴스레이다 관계자는 “수익형 부동산의 거래량 증가는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된다”며 “금리인하, 토지보상금의 유입 가능성 등이 상가시장내 호재로 작용한 것은 물론 그동안 경기침체로 얼어붙었던 부동자금이 점차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거품 발생 우려 VS 대세상승 속단 무리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이 저점을 지나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미분양 감소, 평균 매매가 상승 등 최근 대부분의 부동산 관련 지표들이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지역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청약과열 현상까지 빚어지면서 단기 부동자금이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유입되면 이 지역의 거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소장은 “저금리가 지속되는 데다 주식시장이 여전히 불안해 상대적으로 안정화된 일부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이미 일부 지역의 경우 과열분위기가 보이고 있어 강남 등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적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완전한 봄’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우리투자증권 양해근 부동산팀장은 “저금리 상황에서 시장에 풀려 있는 자금 중 일부가 부동산 시장에 일시적으로 유입됐을 뿐 부동산 시장이 대세 상승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까지 부족하다”며 “실물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인기지역과 비인기지역의 차이가 뚜렷한 만큼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부동산 시장에 불어온 봄바람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의 신호탄인지 아니면 새로운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지, 수요자들의 냉철한 상황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