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긍정적인 생각을 갖으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전직 장관 비서관 최영씨, 택배 배달로 제2의 인생 열어

박용준, 신종명 기자|2012/12/20 07:03
 최영씨(66)는 서울시 영등포구 구립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은하수택배에서 2008년부터 5년째 근무중이다.

지난 2007년 처음 문을 연 은하수택배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력이나 경력 등은 보지 않고, 나이가 만 60세 이상이고 건강한지 여부만을 따지는 영등포구의 대표적인 어르신일터다.

최영 씨(66)는 젊었을 때 장관 비서관과 대기업 등에서 근무했지만, 퇴직 후 택배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최씨가 택배물건을 들고 아파트 입구에서 주민에게 연락을 하고 있다.

최 씨의 업무는 매일 9시30분쯤 출근한 뒤 11시쯤 택배차량이 오면 물건을 수거해 인근 아파트 주민의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일이다.

하루에 전달할 택배물량은 경기 상황에 다르지만 추석과 설, 크리스마스 등 성수기때는 일일 평균 35건, 물량이 없는 비수기때는 15건 내외다.

택배를 배달하는 곳은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아파트로 50㎏이 넘는 손수레에 물건을 담아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정도 걸어야 되지만 최씨의 표정은 즐겁기만 하다.

정년 은퇴한 나이 임에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고 이웃주민들도 어르신의 택배를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형에게 어르신택배 창업을 권할 정도로 택배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있다.

이처럼 최씨가 택배를 하면서 제2의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의 화려한 이력이 아닌 모든 것을 좋게 보려는 ‘긍정적인 생각’ 때문이다. 최씨는 과거 ‘그야말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고려대 영문과를 나온 그는 1969년 농림부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전 조시형 장관을 보좌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무역업과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해외업무를 맡으며 외자재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최씨는 “1979년부터 2005년까지 건설업체에서 근무했는데,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46개국을 돌아다닌 것 같다”며 “아마도 공산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다 가봤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현역시절 왕성한 활동을 해 온 최씨는 건설업체에서 퇴직한 이후 고시원을 2년간 운영했고, 자식농사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의 나이는 어느 덧 환갑을 훌쩍 넘겼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긴 했지만, 자식들이 결혼하지 않아 손자도 없다.

최씨는 “큰 아들은 미국 보잉사에서 근무하면서 매달 3000달러를 생활비로 보내주고, 딸은 분당 쪽 굴지의 회사에서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며 “자식들이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직장문제 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 60세가 넘어서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한 덕분에 특별한 노후대책도 필요 없게 되자 하루 종일 컴퓨터와 시간을 보내는 무의미한 날이 이어졌다.

최씨는 “방 안에 갖혀서 인터넷바둑을 두고 놀다보니 살이 쪘다. 평상시 체중은 65㎏ 정도였는데 금방 10㎏ 이상 몸무게가 더 나갔다”며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는 없는데 게을러지더라. 그 때 복지관에서 택배서비스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은하수택배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헬스 등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운동의 경우 강제성이 없지만 직업을 갖게 되면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겨 몸을 관리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씨는 “택배서비스는 매일 나와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내가 안 나오면 다른 사람이 더 많은 물량을 배달하니 힘들어진다. 돈 내고 하는 운동과 달리 강제성이 있다는 것은 몸 관리에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구립영등포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은하수택배에 근무 중인 최영 씨(66)가 손수레에 택배물건을 옮겨 놓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이처럼 택배업무를 즐겁게 할 수 있는데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최씨는 “옛날 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노동을 몰랐는데, 택배를 해 보니 노동의 즐거움을 알겠더라”며 “물건 한 개를 배달할 때마다 업무가 마무리되니 신경쓸 일도 적어 일반 직장생활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년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향해 “젊었을 때 전문가라도 나이가 들면 나를 찾아주는 것에 행복해야 한다”며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야 제2의 인생이 즐거운 것 아니겠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