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100세 시대] 은퇴설계와 ‘선즉제인(先則制人)’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
김문관 기자|2013/01/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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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김문관 기자 =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하는 일이지 다리 떨릴 때 하는 일이 아니다.”
어느 라디오 진행자가 청취자가 보내준 메시지라면서 읽어준 말이다. 운전을 하면서 듣고 있던 필자는 순간 “그래, 맞아, 이거야!”하면서 무릎을 쳤다.
이후 필자는 은퇴관련 강의 때마다 재테크와 은퇴준비도 여행처럼 가슴 떨릴 때 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가슴 떨릴 때는 거의 여행을 하지 못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하는 노래를 부르기는 하면서도 실상은 연간 근로시간이 2100시간에 달한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게는 700시간 이상 더 일한다.
이렇게 젊어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늙어서, 즉 다리 떨릴 때라도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주요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노후에 대한 불안 정도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노후는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세요’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은퇴연령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연령은 53세로 일본의 60세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61~64세에 비해 매우 낮다. 일이 있을 때 열심히 일하기는 하지만 일할 기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어도 7년, 많게는 10년 이상 짧은 것이다.
사실 50대 초중반이면 한창 일할 나이인데다 급여수준도 가장 높을 때다. 소득수준이 정점에 달해 몇 년간 더 가줘야 노후준비가 가능할 텐데 급전직하로 떠밀리다시피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상시화되면서 조기퇴직 또는 명예퇴직 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평균수명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불과 20년 전인 1990년만 해도 71세였던 평균수명이 2010년에는 81세로 늘어났다. 은퇴시기는 빨라지는 반면 은퇴 후 살아야 할 여생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나마 모아놓은 돈이 얼마간 있다손 치더라도 금리가 연 4% 안팎으로 낮을 뿐 아니라 당분간 올라갈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다.
필자는 두 자릿수 금리는 이제 박물관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앞으로도 두 자릿수 금리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금리가 10%, 20% 한다면 그 이자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네 번째는 자식들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못 벌어도 없어도 너희들 교육만은 내가 시키겠다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 교육에 매달리고 또 그 자식들의 결혼비용까지 챙기다보면 정작 자신은 말 그대로 준비 안 된 노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이유가 은퇴 및 수명 연장과 관련된 금전적·재무적인 측면이라면 다섯 번째는 비재무적 측면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하기 전에는 바쁘답시고 여행은커녕 제대로 놀아보거나 남을 위해 봉사해 본 적이 없다.
평소에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취미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추억을 쌓아보지 않은 사람이 막상 은퇴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놀아본 놈이 잘 논다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돈만 있으면 되지, 그 까짓 거 내가 못 하겠어”하는 말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도 일하는 것 못지않게 놀면서 즐기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중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몇 가지나 될까. 기껏해야 자식에 대한 투자와 다섯 번째인 비재무적 여건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은퇴시기와 수명, 저금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확실하기까지 하다. 특히 저금리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라고 할 수 있고, 은퇴시기와 내 자신의 수명 또한 외생변수 못지않게 주어지는 여건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은퇴설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은 최대한 통제하는 동시에 통제할 수 없는 여건에 대해서는 그 같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건은 은퇴와 수명을 말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기는 해도 그 시기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예를 들면 소득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은퇴 및 노후준비를 하는 것만이 노후의 불안을 줄이는 길이다.
‘선즉제인(先則制人)’은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 여기서 남을 의미하는 사람 인(人)을 인생(人生)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남보다 앞서 은퇴를 준비하면(先則) 능히 내 인생과 노후를 다스릴 수 있다(制人生).’ 은퇴준비는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바로 나 스스로와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