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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마닐라타임스와 래플러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에선 지난 주말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ICC 압송·수감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수도인 마닐라에서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위한 기도 집회가 열렸고, 그의 고향인 다바오시에서도 약 2만명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15일 마닐라에서 열린 집회에는 수천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집으로 데려오라"며 "체포와 이송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가한 한 부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너무 지나치다"며 "ICC의 움직임은 정치적 억압, 권력 남용이고 사법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최측근인 크리스토퍼 봉 고 상원의원은 이날 열린 집회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그곳(헤이그)으로 보낼 수 있다면 여기(필리핀)로 돌아오게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에게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돌아왔고 (체포에) 직면했다. 그는 도망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그의 근거지인 남부 다바오시에선 더 큰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16일 예정됐던 다바오시 승격 88주년 기념 행사는 사실상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석방과 귀국을 요구하는 집회로 바뀌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귀환을 촉구하는 가두 시위에 참가한 다바오 시민 마스 플로레스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비판을 받고 있어도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좋은 지도자"라며 "그가 재임 중에 한 '좋은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 크링 아시도르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처형'된 피해자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들은 무고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나 강간·살인 용의자들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2034년까지 적어도 두 번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권력을 유지하려는 마르코스 가문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는 야당 지도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라 맹비난하고 있다. ICC의 재판이 최소 3년에서 많게는 10년까지 걸렸다는 점을 들어 "79세의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헤이그의 교도소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란 점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관해 "우리 중 누구도 범죄와 마약에 대한 해결책이 수천 명의 필리핀 동포를 죽이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며 "그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됐다. 임기 초에 ICC의 '마약과의 전쟁' 조사를 주권 침해로 여기고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던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후 두테르테 가문과 이견차이를 보이며 대립하게 되자 태도를 바꿨다. 이에 지난 11일 홍콩을 방문하고 필리핀으로 돌아온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 대한 ICC의 체포 영장을 집행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체포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같은날 ICC가 위치한 네덜란드 헤이그로 즉시 압송됐다. ICC에 수감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공판 전 심리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화상으로 참석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마약 복용·판매 용의자가 투항하지 않으면 경찰이 사살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 과정에서 약 6000~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지만 인권단체와 국제사회는 약 2만~3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ICC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반인도적 범죄로서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최소 43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형사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ICC가 발부한 체포 영장에 따르면 재판부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 시설 개인적인 '처형 부대'를 운용했고, 이후 대통령이 된 후에도 필리핀 법 집행 기관을 총괄하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지휘했다는 '합리적인 증거'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