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 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로우키(low-key)’ 기조를 이어가는 동안 일본은 오히려 한국 시민단체의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 설치 및 독도 해양기지 건설 등을 중단시켜달라는 요구를 하는 등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평화비를 설치할 예정이어서 이를 둘러싸고 양국 간 외교마찰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안부 평화비’ 설치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 시민단체의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한국 측에 “적절히 대응해달라”며 사실상 비석을 다른 장소에 세우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석설치=한일관계에 부적절한 활동’이라는 등식을 마련한 것이다.
반면 정부 대응기조는 상대적으로 ‘미적지근’하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정부가 나서기가 쉽지 않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본이 ‘대국적 견지’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외교부 내에서 운영 중인 ‘한일 청구권 협정 태스크포스(TF)’에 참석하는 한 자문위원은 11일 아시아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는) 대통령이 한·일 정상차원에서 ‘공식입장을 밝혀 달라’는 식의 언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관이나 대사급 실무자들을 불러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일본 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외교부는 지난 9월 21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위안부 문제가 언급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대신 일본 측이 요구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의 단초만 마련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관심의 초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주 말 개최될 것으로 알려진 차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할지의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일본은 차기 정상회담에서도 과거사 문제보다는 한·일 FTA협상 조기 재개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한일청구권 협정 3조’(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 간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며, 이에 실패했을 때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에 따른 중재위 구성 제안 시기 등을 놓고 정부 내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것도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자문위원은 “중재위 구성을 제안해야 한다는 의견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이 함께 나왔다”면서 “중재위로 갈 경우 행정절차나 중재위원 선임 문제 등에 대한 의견 제시도 있었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는 현재 법적분쟁해결절차(청구권 협정 3조)를 밟고 있다”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법적절차를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일본이 우리 정부의 양자 협의 제안에 끝까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결국은 중재라는 절차까지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적 절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정부의 보다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벌써 5분의 피해자가 돌아가셨다”면서 “앞으로 상황을 봐야겠지만 청구권 협정의 법적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중재위 구성 제안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